feeling in my life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앞두고 시작된 것이 컴 연수였다.
그렇게 정신없는 생활이 이어졌었다.
나름대로 엄청 힘든시간이었고 그 사이 중등임용고시가 치뤄졌고 학교일은 학교일대로 바빴다.
어느날 교무실 옆에 있는 죄로 부대장의 원고를 교정해준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몇 번을 교정 시 부른적이 있다.
그리고 연말이 되어 교지를 담당한 선생님이 나에게 원고부탁이 들어왔고
또 다시 수원교육에 올릴 원고가 학교당 하나씩 할당되었나보다.
그 담당교사도 원고를 나에게 부탁했었다.
그냥 그동안 학교 근무하면서 써 둔 원고를 올렸다.
그런데 그것이 채택되어 수원교육에서는 원고료를 준다고 계좌번호까지 적어갔다.
그리고 각 지구별 교장단에서 장학자료를 만드는데 그것도 부대장은 나에게 밀어부쳤다.
난 죽어도 못한다고 이틀을 버팅겼고 아예 교무실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부대장은 드디어 지난 토요일 나를 불렀다.
해서 내야 한다고
할 수 없이 그것도 내 차지다.
다 만들어 대장에게 보였다 대장은 자료를 다 어디서 찾았냐고 한다.
자료는 대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만든 것들이다.
오늘 부대장은 아침에 나에게 고맙다고 말씀하신다.
그 사이 연수 과제 제출이 있었다 열심히 했고 두번 다 만점을 맞았다.
이제 남은것은 연수시험이다.
오늘 시험장에 가니 한 40명 되겠지 생각했는데
커다란 강당에 선생님들이 꼭 찼다.
초등, 중등 다 합쳐 250명 연수인데 파주로 가지않고 거의 수원으로 왔나 보다
내 뒤에 앉은 남자선생님은 무슨 노트정리를 그렇게 했는지 두툼한 노트가 빼곡하고
어떤 선생님은 프린트물로 너무도 열심히 공부한다.
다들 선생들이라 공부에는 일가견이 있듯이 보이고 주눅이 든다.
난 프린트가 고장나 한장도 뽑지 않았다
쭈욱 훑어보니~
5:1의 경쟁률을 뚫고 왔다는 선생님들이 지긋하게 나이들을 먹었다.
경쟁률이 나이였나보다
그래도 그 앞에서 말씀하시는 율곡연수 장학사는 60년생 이전 선생님은 없다한다.
뭐야 그럼 내가 나이가 많은거잖아!
그런데 다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
애고 물러~
그래도 나는 믿는데가 있었다.
그것은 영어다.
웹디자인 자체가 말이 다 영어이다.
그러니 글만 제대로 읽으면 된다.
같이 간 선생님은 들어갈 적 나에게 쪽지를 주었다
거기다 답을 적어서 나갈 적 주라한다.
그런데 이건 들어가보니 운전면허시험처럼 시험지의 유형이 세개이고
너무 멀리떨어져 줄수가 없다.
그렇게 시험을 치뤘는데 모르는 문제가 없었던것 같다.
아마도 만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1등하면 10만원 준다 한다.
이렇게 내가 위치했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아침이면 손을 호호불며 아이들과 운동했고 근무중에는 아이들에게 최선의 눈길을 주었고
집에오면 파 마늘 다듬어 식구들 밥상을 차리고
딸아이가 학원갔다 오면 기다렸다 공부를 가르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영낙없는 주부이다.
이 일을 내가 아끼는 물건 중 시장가방의 뜻이다. 나는 가정에서 나의 자리도 책임을 다할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