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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의 아이들

feelings 2013. 7. 30. 16:23
동티모르 내전 현장 (상) (1999-06-01) 기사(1994-1999) /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뛴다

2006/08/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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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내전 현장 (상)
방화…난사…통합파 밤마다 행패
주민  산속  피신생활…3월후  100명  피살
대부분  인니독립파들,  타지방으로  도피

 

 

동티모르의  관문  딜리  바우카우  공항에  도착하면  붉은  플래카드가 반긴다.「환영합니다. 귀하가  동티모르를  사랑한다면  친인도네시아(통합)파와  독립지지(분리)파  둘  다  사랑해주십시오.」 공항을  나서면  평화로운  낙원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바다,  무성한  열대림,  작열하는  태양,  청정한  공기, 산책하는  염소와  돼지. 마치  시계바늘을  수십년  전으로  되돌린  동화책같은  풍경에서  어느 누구도  내전의  현장임을  실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모습  이면에  숨막힐듯한  공포가  도사리고  있음을 곧  알  수  있게  된다.

 

      
저녁6시되면  인적끊겨
      
 다운타운에  도착해도  행인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주말인데도  저녁  6시가  되면  인적이  끊겨버린다. 전투복  차림에  소총을  들고  험악한  표정으로  순시하는  인도네시아 정부군이나  민병대만  눈에  띌  뿐이다.


  afp  사진기자  웨다가  안내한  근교  메띠아우드  마을.  주민들은  밤만  되면  산속으로  피신했다가  아침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친인도네시아파  무장  민병대가  밤만  되면  찾아와  독립지지파  청년들을  찾아내라고  윽박지르고  불을  지르는  등  행패가  그치지  않고  있다.

 

 한  주민은  『우리  앞에서  ak-47총을  사방에다  쏘며  겁을  준다』며  몸을  떨었다. 50대  남자는  『당신도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즉결처분받을  수 있다』며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1524년부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아온  동티모르는  1975년  포르투갈의 일방적  철수로  독립을  맞을  뻔하다  그해  12월  인도네시아군의  침공을  받았다. 이듬해  7월  인도네시아  27번째  주(주)로  강제  편입된후  반항과  테러, 굴종과  살육으로  얼룩져왔다.

 

  80만  동티모르  인구중  4분의  1인  20만명이  그동안  살해-실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자를  안내해  준  심톰플(가명·46)씨는  『그전  포르투갈  지배가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생명의  위험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후  늘  공포와  학대속에  살았다』고  말했다.

 

     
23년전  인니에  강제편입
      
 기자가  머물던  호텔  종업원은  귀엣말로  『많은  동네사람들이  죽거나 행방불명되는  것을  직접  보았다』고  속삭였다.  약간  민감한  얘기도  마음놓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공포의  유령들이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만나는  주민마다  낮은  어조로  『인도네시아군처럼  잔인한  이들은 없어요…』라고  털어놓는다.


「수고하고  짐  많이  진  자들이여,  모두  내게로  오라」 매주  일요일이면  학대받고  지친  주민들이  성당을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동티모르의  아픈  현실을  전세계에  알린  공로로  9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카를로스  시메네스  벨로  주교의  집  「케디아만  케우스쿠판」 앞마당에서도  일요일  새벽  6시면  어김없이  미사가  열린다.  30일  새벽  이곳을  찾았을때  주변  거리가  온통  신도들로  가득차  있었다.


  다운타운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군중을  이곳에서  찾았다. 1000여명이  바나나  야자나무  그늘  아래서  미사를  올리는  모습은  세속인이  보기에도  은혜가  충만되게  느껴졌다.  넉넉한  미소의  벨로  주교는  포르투갈어,  인도네시아어,  동티모르  방언(테툼)  등을  섞어  가면서  마음들을  위로한다.


  어린이들까지  까르르  웃길래  무슨  뜻이냐고  옆사람에게  물었더니  『정치와  정치가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벨로  주교는  물론  분리-독립을  지지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통합파들의  암살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외신들의  전언이다.

  주교  집  앞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로  바다로  연결돼  있다.  그  경치는  마치  스페인  바로셀로나시(시)  앞바다처럼  이베리아풍(풍)  정취가  물씬  풍긴다. 오른편  산꼭대기에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을  본떠  만들었다는  대형  예수상이  이쪽을  굽어보고  있다.  왼편은  주정부  건물과  광장이  들어서  있다.
 
      
작년부터  독립운동  활발
      
 인구  20만의  이곳은  중심가도  걸어서  3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400년  넘게  포르투갈  지배를  받은  탓인지  아직도  포르투갈풍의  음식  건물  음악이  생활  곳곳에  남아  있다. 작년  수하르토의  32년  독재체제가  무너져  내리면서  지하에  숨어있던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운동  기운은  다시  솟아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국제  여론에  굴복,  동티모르인의  독립가능성을  시사한  이후  동티모르의  독립은 사필귀정(사필귀정)으로  여겨진  듯  싶었다.

 

   그러나  독립을  반대하는  인도네시아  군부  강경파들의  공작으로  동티모르는  지난  3월  이후  100여명이  살해되는  비극이  재현돼  왔다.  인도네시아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통합파  민병대들은  독립지지파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견디다  못한  독립지지  세력들은  산속이나  다른  지방으로  도피한  상태다.

 /딜리(동티모르)=함영준기자

 

동티모르의 아이들을 공부하다가 퍼 왔는데요

참 슬프네요

10년전의 일들이 아이들 가슴속에 숨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