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알려진 실체는?
어느날 건설중인 다리 옆에서 한 부상자를 함께 들여다보던 기사가 리비에르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이 다리가 으깨진 이 얼굴 값어치만큼은 되겠지요?"이 길을 이용할 농부들 중에 그 누구도 다음 다리로 돌아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 이얼굴을 훼손해도 좋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해서 다리를 세운다. 그 기사는 이렇게 덧붙였었다."보편적인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모여 이루어지는 겁니다.그것은 아무것도 정당화 할 수 없어요"나중에 리비에르는 그 기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값으로 따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언제나 무엇인가가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어치있는 것처럼 행동하지....그러나 그것이 무엇인가?"이제 비행기 승무원을 생각하니 리비에르는 번민을 느꼈다.행동이란 그것이 다리를 건설하는 행동이라 할지라도 실망을 안겨준다. 리비에르는 '무엇의 이름으로?'라고 이제는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생각했다.'어쩌면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그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을 텐데'그는 저녁 램프의 황금빛 성전 주변에 모인 그들의 얼굴을 생각했다."무엇의 이름으로 나는 그들을 거기에서 떼어낼 수 있는가?"무엇의 이름으로 그는 그들에게서 개인적으로 행복을 빼앗았단 말인가? 이러한 행복을 보호하는 것이 사람의 첫번째 의무가 아니겠는가?그러나 그 자신은 그 행복을 파괴하고 있었다.그러나 어느날 그 황금빛 성전은 신기루같이 무정하게 사라져버린다.늙음이나 죽음이 그 자신보다도 더 무자비하게 그것을 파괴해 버린다.어쩌면 그보다도 구해내야 할 보다 영속적인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리비에르가 일하는 것은 인간의 이런 부분을 구해내는 것이 아닐까?그렇지 않다면 그 행동은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옛날 백성의 지도자 인간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지 않았을 지 모르나그의 죽음에는 무척이나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그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느날 지워질,모래사장의 발자국 같은 종족에 대한 연민이었다.그래서 그는 사막도 파묻어버리지 못할 석전을 세우려고 자기 백성을끌고 갔던 것이다.
======================
후손들에게 자기 종족을 이끌고 가기 위한 희생이라고 그리고 석전을 쌓아 우리 종족이 이렇게 훌륭한 자취를 남겼다고생각하는 지도자과연 누구를 위한 삶인가?후손들은 행복한 공휴일 석전 주위를 돌며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대단한 종족이었다고우리는 국사 시간에 업적을 남긴 왕을 훌륭한 대왕이라 배웠다.그 업적이란것이 소중한 개인의 행복을 담보로 등에 업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적이 있던가?